일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 멍해질 때가 있다.
기력을 다 소진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지는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릴 때도 있다.
심사가 뒤틀려 다 때려치고 ‘나 안 해‘ 하고 싶을 때도 생긴다.
일상생활에서 그러긴 힘드니 뭔가 만족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
이럴 때 신나게 달리는 록음악을 들으면 역설적이게도
마음의 평화가 온다. 스네어를 사정 없이
두들기는 드럼의 파열음, 미친 듯이 질주하는 베이스와 기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고음역의 쇳소리
보컬을 듣고 있으면 사이다 한잔 마신 것 같은 통쾌함으로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럴 때 추천할 만한 음악 중 하나가
영국 록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페인킬러(painkiller)’다.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진통제‘쯤 되는데,
가사의 문맥을 파악해보면 ‘구원자(?)’ 정도로 들린다.
Judas Priest – Painkiller
가사의 일부를 발췌하면 이렇다.
‘지구는 악마들에게 점령당했고, 인류는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간청에 답해 하늘에서 구원자가 내려온다/
천둥이 내리치는 구름과, 작열하는 강철의 번개를 뚫고/
죽음의 바퀴 아래 악마들은 몰락하니/그는 페인킬러/
이것이 바로 페인킬러/레이저 빔보다 빠르고/
원자 폭탄보다 강렬하다‘.
이 노래의 매력은 도입부부터 시작된 강렬함이
듣는 내내 이어진다는 것이다. 쉴 새 없이 밟아대는
더블베이스 드럼 비트를 타고 경쾌한 기타 리프가 서두를 채운다.
이내 카랑카랑한 보컬의 쇳소리가 고막을 긁어댄다.
이 노래를 한 번도 듣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라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록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헤어나지 못하는 중독성이 있다.
록 마니아들이 시대를 수놓은 명곡을 꼽을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곡이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보컬 롭 핼퍼드(Rob Halford)의 역량이다.
빠른 비트에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고음을 질러야 하는
이 곡은 극악의 난도를 자랑한다. 워낙 곡이 어려워 롭
스스로도 녹음 버전을 뛰어넘는 라이브를 들려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가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 한국 나이로 마흔이었다(그는 1951년생이다).
불혹의 나이를 맞아 성대가 두꺼워질 무렵에,
힘이 달릴 시절에 그는 보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명곡을 완창했다.
이 노래 최고음은 ‘3옥타브 라‘다.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두성으로 진성 영역에서 초고음을 소화한다.
더 놀라운 것은 롭이 아직까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환갑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헤비메탈을 하고 있다. 물론 전성기에 비해 목소리는
많이 약해졌지만 노장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한다.
요즘 이 노래를 부를 때 롭을 보면 허리를 반으로 굽혀
대머리를 훤히 내보이는 자세를 유지한다.
나이가 들어 노래를 부를 때 복압을 유지하기 힘드니
허리를 굽혀 압력을 늘리고 소리를 머리로 보낸 뒤
공명을 이용한 두성을 써 날카로운 쇳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주다스 프리스트란 밴드는 헤비메탈계의 전설 같은 존재다.
아직까지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니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부를 만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메탈리카‘보다도 훨씬 선배다. 1969년 영국 버밍엄에서
원년 멤버인 K K 다우닝(K K Downing·기타·지금은 탈퇴)과
글렌 팁턴(Glenn Tipton·기타)이 결성했다. 무려 52년 전이다.
데뷔 앨범은 1974년 냈다. 헤비메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처음 만든 주인공이다. 강렬한 쇳소리에 가죽바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금속성 장식,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멜로디.
이들은 스스로 ‘메탈 갓‘이라 선포하며 한 세대를 풍미한 거장이 된다.
그러나 <Defenders Of The Faith>를 마지막으로
주다스 프리스트의 세력은 눈에 뜨일 정도로 약화되어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팝 메탈 음반 <Turbo>는 골수 팬들의
냉담함만을 불러왔고, 명예 회복을 위해 내놓았던
<Ram It Down>은 힘이 부쳤다.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팬들은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메탈리카가 <Load>를 공개했을 때 대다수 지지 층이
보냈던 냉소를 떠올리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들은 이 난국을 젊은 피의 수혈로 해결했다.
Judas Priest – Leather Rebel
(그 유명한 폴 길버트도 몸을 담았던)
하이 테크닉 집단 레이서 엑스(Racer X) 출신의 속주 드러머
스코트 트래비스(Scott Travis)는 암울한 상황을
후련하게 날려줄 확실한 대안이었다.
무작정 난타한다는 표현이 적절한 그의 현란한 드러밍이
그룹을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Leather rebel’,
‘One shot at glory’에서 그 지칠 줄 모르는 힘이 잘 나타난다.
다시 한 번 비상하는 롭 핼포드의 투혼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한때 록 비디오 클럽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흘러나왔던
타이틀 트랙 ‘Painkiller’는 그의 재능의 무궁무진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주술 굿판을 벌이는 듯한
그의 원맨쇼가 펼쳐지는 이 곡은 듣는 이를 단숨에
감정 이입의 대상으로 감염시켜 마음대로 조종하는
마력이 실린 넘버다. ‘Metal meltdown’, ‘Night crawler’
에서의 파괴력도 녹록하지 않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얼터너티브 대공습을 1년 앞두고
‘주다스 프리스트는 죽지 않았다‘는
문구를 만천하에 공포한 선언문. 그렇게 그들은
소생했지만 1년 후 메탈은 다시는 영원회귀할 수 없는
머나먼 지층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